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에서.
김도식/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로체스터대학교 철학박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 솔직한 반응은 "그게 가능해?"였다
원수를 용서하기도 어려운데 사랑까지 하라는 것은 너무 높은 수준의 요구로 여겨
졌기 때문이다.
숭고한 聖人들은 원수를 사랑할 실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심지어 나 자신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마당에 원수를 사랑하라니!
이는 종교에서 말하는 이상에 불과할 뿐,먼나라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
는 가르침이 좋은 말이긴 하지만 교훈으로 각인되지 않았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자존감이나 자존심이 낮은 학생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서울에 있는 과학고를 졸업하고 삼수끝에 문과
로 전환하여 법을 전공하게 된 학생이다.
내가 이 학생과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였다.
"자신은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 너는 과학고를 어떻게 들어갔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운이 좋았다고 답을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과학고를 들어간것은 "운이 좋아서"인 반면 자신이 과학고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였다.
자신의 성공 원인은 자신의 실력이 아니지만 자신의 실패는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학생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너를 24시간 쫓아다니며 네가 잘 한일에 대해서는
"운이 좋아서 그렇지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제대로 못한 일에 대해서는 "넌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라고 비아냥대면 그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그 사람 정말 싫을 것 같아요. 정말 원수가 따로 없네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 원수가 따로 없지?
그런데 지금 너에게 그 원수와 같은 역할은 누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으니까,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제가 바로 원수네요!!"
이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다시금 해석하게 되었다.
"원수를 사랑하라!"에서 말하는 "원수"가 나를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에서 "원수를 나 자신으로 해석한다면 이 말은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말이 된다.
내게 엄청난 피해를 준 사람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일반인들이 공감하기 어려울지라도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한 자아성찰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 사이의 조화를 배울 필요가 있다.
자책을 하지 말라는 것이 곧 자기반성을 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특정한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것과 유사하다.내가 어떤 스포츠팀을 좋아할 때 감독의
선수기용이나 작전 등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다.하지만 이러한 비판의 바탕에는 그 팀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 있다
팀에 대한 애정이 없는 사람은 그 팀에 무관심할 뿐,비난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말이 타당해 보인다.
즉 자아반성을 하더라도 자신을 응원하는 마음을 굳건히 유지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이다.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불편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불안을 상쇄하기 위하여 나보다 못한 사례를 찿으려 한다.
나보다 시험을 더 못본 친구를 찿는 심리와 비슷하다. 나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발견되는 댓글들이 때론 필요이상으로 험악한 이유도 비슷한 심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자신을 사랑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는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타인을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자식을 편애하면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삐뚤어지듯이 사랑받지 못한 내 안에 있는 나의
마음도 반란을 일으킨다. 먹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 거식증이나 폭식증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와 비슷하다.
우리의 인생은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할 때도 있고 험난한 산악지대.사막과 같은 곳을
지나가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내게 주어진 인생길을 잘 주행하려면 "나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장단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는 자동차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정언적(定言的)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사랑하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진지하게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이다
원수인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도식교수/계간.철학과 현실.2017년.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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