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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우석 인물에 대한 이해

마음나들이 2017. 10. 19. 09:55

 

 

 



반황우석 시민지식동맹 



한국에서 과학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황우석 사태는 매우 특별하다

운동지향의 과학사회학 전공자들이 직접 반황우석 시민동맹을 형성하고 황우석

지배지식동맹과 싸웠기 때문이다


황우석 사태가 몆달동안 지속되면서  전공자들은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였고 모든 사람

들이 황우석을 지지할 때 과학사회학 전공자들은 그를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들은 용감했고 시민지식동맹의 일부로서 결국 황우석 지배지식동맹을 무너뜨렸다

삼성백혈병 사태를 이해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황우석 사태를 이해하는 것도 버거웠다.

 

황우석 사태는 과학엘리트.정치엘리트 언론엘리트 들의 페쇄적 지배지식동맹의 위험성

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이 책의 주제인 지식정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례가 된다.

 

황우석 지배지식동맹을 이해하기전에 황우석이란 인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는 1953년 충남부여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다섯살에 아버지를 여의였다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수의대에 진학했고 오수각 교수 밑에서 수의산과학

분야로 1982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황우석의 꿈은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는것이었는데

1984년 교수임용에서 탈락하자 일본 홋가이도대학교로 연수를 갔다

 

그는 가나가와 히로시 연구실에서 동물 수정란에 필요한 미세조작기술을 습득한다.1986년

서울대 수의대 교수가 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 주목을 받을만한 과학논문을 발표한 적

은 없었다.

 

1990년대 초부터 동물을 이용한 수정란 복제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다른 연구팀보다

기술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특유의 부지런함과 집중력으로 1995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 수정란 핵이식 복제에 성공했다.


그는 일본연수를 통해 동물복제연구의 국제적 흐름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를 산업적으로 연결시키는 사업가적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그는 1990년대 중반이후

동물복제 연구에서 선두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한국 최초의 복제소로 알려진 영롱이의 탄생은 특별한 검증 절차나 논문이 없었는데도

정치계와 언론계를 이용해 스타과학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다.


황우석은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과감한 전략을 펴나간다. 황우석은 과학

논문도 없이 영롱이가 임신한지 4개월만에 연구비를 타기 위해 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났다


그의 부상이 과학자 공동체의 검증과 합의없이 언론과 정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황우석사태에서 밝혀졌듯이 영롱이가 복제소라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PD수첩>의 취재결과 실험실 내부자들은 영롱이가 복제소가 아니라고 증언했고

황우석 또한 과학적 가치가 상당했음에도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과학사학자 김근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롱이는 성체세포 복제도 태아세포 복제도 아닌 수정란 이식기술로 만들어진 "평범한 우량

젖소"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는 언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서로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자세히 몰랐다


황우석은 영롱이 복제를 통해  과학기술자상, 국회과학기술상.수의학술대상

등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었다.황우석이 언론을 통해 과학적 성과를 부풀렸던 이유는

대규모 연구비를 수주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과학은 촌각을 다투는 경쟁적인 사업이며 영롱이 복제를 통해 국내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언론과 정치권의 동맹을 통해 대규모 실험시설을 갖출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황우석 연구팀은 줄기세포팀.바이오장기팀.질환내성동물팀.특수동물 복제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우석 사태를 촉발했던 연구조작은 줄기세포로부터 기인한다. 이후에 신원을 밝힌

제보자 류영준은 당시 황우석 아래에서 줄기세포팀장을 맡았으며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의 연구를 주도했다


줄기세포팀과 바이오장기팀은 황우석이 스스로 주도할 수 없을 정도로 외부의 연구인력에

크게 의존했다.

줄기세포연구에서 황우석은 미즈메디병원과 서울대학교 문신용 교수팀과 협력했다

미즈메디병원은 체세포 복제를 위하여 여성들의 난자를 제공했고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김선종. 박종혁이라는 핵심 연구인력을 제공했다.


김선종은 연구성과를 내라는 황우석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줄기세포 섞어심기를

주도하게 된다.


김종영/知民의 탄생



http://cafe.daum.net/daum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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