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들지 않는다
마루야마겐지
마당을 손질하다가 우연히 낙엽에 감싸인 죽은 참새를 발견했다. 외상(外傷)은 없고 겨울이
머지 않은 탓에 벌레도 꼬이지 않았다. 눈은 감겨 있었다. 깃털에 흐트러짐도 없었다.
즉 새로서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死因은 알수없다.
그러나 작은 죽음에는 가슴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일개 독립한 생명체로서 깃털 하나
까지 자립한 젊음으로 채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이며 진정한 삶을 산 끝에 획득한 이상적인 죽음이리라. 나의 최후
도 이 죽음에 한없이 가깝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주검을 자신의 시신으로 상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참새의 주검을 진달래나무 아래
구멍을 파고 고이고이 묻어주었다.
야생동물의 죽음은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살풍경한 강가 들판 한구석에 죽어 말라
비틀어진 산토끼도 둥지에서 떨어져 죽은 새끼 새의 주검도 배를 들어내놓고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도 자세히 보면 모두 청결함과 숭고함을 풍기고 있다.
"아" 이 생명은 마음껏 살다가 미련 없이 죽어갔구나.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런것이구나" 하고 절감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에는 조문도 기도도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과거에 최신의료기기를 갖춘 병원의 호화로운 1인실에서 최고의 간호를 받으며 임종을 맞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전신에 주사바늘과 튜브를 꼿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모습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을 받고 있는 듯한 인상밖에 받지 못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생각한데로 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결정했다.
삶에서 자립한 젊음을 추구했으니 죽음에도 똑같은 척도로 임하고 싶다. 삶과 죽음에 관한
나의 기준은 명백하다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 외에는 없다. 간호가 필요하다고 판명되면
사람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수를 써서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이다.
그 선택을 흔히 있는 자살로 여겨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간호는 지옥이다 간호를 받는 쪽도 그렇지만 간호를 하는 쪽에게는 그 이상의 지옥이 없다.
그 지옥을 피하는 것이야말로 전 인생에서 자립한 젊음이 시험받는 최대이자 최후의 사건
일 것이다.
아내에게 미리 전했다. 쓰러져 의식을 잃는 일이 있어도 절대 구급차를 부르지 말라고.
죽음을 확인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말고 방치하라고.
산 채로 병원에 실려가는 것은 지옥행이다.설령 회복되어 원래의 몸으로 돌아왔다 해도.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예순살 전후라면 몰라도 그 나이를 지난 자가 생존 본능으로 오래 살아서 뭘 할지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살고싶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목숨에 집착하는 것만큼 보기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죽으면 곤란해지는 사람이 정말 있는가. 실제로는 그 반대가 아닌가.
적어도 자신의 최후 때만큼은 이성과 지성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뇌가 상해 치매가 온 경우에는
속수무책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을 뿐더러 가족조차 못 알아보고 자신조차 잊어
버린다.
내게는 자식이 없다. 사고력이 미치지 않는 깊고 깊은 속에서는 굳이 자식을 낳을 만큼
이 세상이 좋은지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투쟁을 하도록 하기 위해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는 시대가 좋지 않다거나 지엽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다 아무리 시대가 발전하고 인간의
의식이 변한다 해도 태어나길 잘했다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하다고 할 만한 세상은 오지
않는다.
어지간히 축복받은 이상론자와 낙천가의 뇌 속이 아니고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본능에 맹종해서 그저 욕망에 휘둘려 사는 것은 딱 질색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고 퍼뜨리기 위한 확고한 동기를 찿아낼 수 없는 한. 노후에는 적적할
테니까.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니까 그런 이유만으로 자식을 만드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
존재하는 자로서의 자아란 과연 무엇일까. 무엇을 가지고 자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본능인가 .아니면 본능에 반기를 드는 이성인가 .
또는 정신까지 포함한 육체 전부인가.지나치게 기본적인 이 질문에 대해 철학도 의학도
물리학도 절대적인 해답을 도출해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라는 장르가 성립하는 것이다.
예술이 되었든 발명이 되었든 획기적인 신세계를 개척해 나기려면 나 같은 타입의 사람은
필요 불가결하지 않겠는가.
즉 기존의 개념전체에 의문을 품고 존재양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세상의 흐름에 공공연히
거역하고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정열적인 소수파 말이다 /계속
나는 길들지 않는다/마루야마겐지.丸山健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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