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포착한 풍경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야기 한 글에 누군가가 "알똥말똥하여라..... 사는 게 머가
그리 복잡하다요"라는 글을 남기셨다.맞는 말씀이다.
알똥말똥하고 복잡하게 보이는 것은 실제로 "여성성과 남성성이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재(實在)를 실재대로 보는 것은 올바른 것 "즉 정견(正見)이다
실재를 실재대로 보지 않는 것" 즉 명징하게 보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이런 습성에 젖어있다보니 실재를 실재대로 보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것일 뿐이다
.
이걸 좀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여성성과 남성성은 실재적으로만 구별"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은 절대로 분할 즉 자를 수 없다. 구별은 되는데 자를 수 없다?
그게 복잡한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지천에 깔려있다. 가령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육체와 정신이 그렇다.
구별은 되는데 분할할 순 없다. 그릇의 모양도 질도 따로 분할해 낼수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확대해보자. 가령 "장작불"같은 걸 생각해보자. 장작과 불도 구별은 가능한데
분할은 불가능하다. "장작(연료)도 없는 불만 존재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태우지 않는 불은 불가능한 존재다 . 불이 없는 장작은 이미 장작이 아니다
그냥 나무막대기다.
불이라는 개념이 있기에 장작이 되는 것이고 ,마치 인간이 정신과 육체가 모두 필요하듯...
그런데 장작불은 물질적인 것.즉 연장(延長)속성"을 가진 존재다.여기서 연장은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물질조차도 분할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물을 수 있겠다. 물질이니까 쉽게 분할할
수 있을것 같지만 속성(屬性)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물질 역시 분할할 수 없다.
가령 사과는 물질이고 연장 속성을 갖고 있다 칼로 자르면 둘로 갈라진다. 한 개의 사과가
반쪽으로 두 동강이 난 것이니까 분할된 것이다.그러나 延長屬性이 변한 것은 없다.
똑같은 연장속성을 가진 두 동강의 사과조각으로 변한 것뿐이다
둘은 잘라도 같은 속성 즉 연장 속성에 속하는 존재인 것이다.즉 쉽게 분할 할 수 있을것
같지만 같은 속성에서는 결코 분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엄마와 딸은 분할 가능한가? 당연히 엄마의 몸이 있고 딸의 몸이 있으니 가능할 것
같다.하지만 이 역시 "실재적 구별이 가능할 뿐 분할할 수 없다.
가령 딸이 없는 엄마가 존재가능한가?딸이 없는데 누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엄마와 딸은 "장작불과 같은 실재적 구별로서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실재적 구별은 "동시성"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엄마가 먼저 존재해서 딸을 낳은
것이지만 실제론 엄마와 딸은 동시에 탄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무토막과 불이 만났을 때 동시에 탄생하는게 장작불"인 것이다.
철학하는 시인./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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