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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야의 확대가 없는 성장은 성장이 아니다.

마음나들이 2018. 4. 10. 08:54

 

 

 

 

 

김영민/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시간의 강물 속으로 던져진다. 그리고 몸이 자라고 마음이

영글어간다. 흔히 "성장"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먼저, 성장한다는 것은 주변과 자신의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다.

성장의 체험속에서 크기란 상대적이며 가변적이다.

 

꼬마였을 때 가로수는 아주 커 보였다.그러나 자라면서 그 가로수는 점점 작아 보이고

가로수 너머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확장된 시야 속에서 한때는 커 보였던 부모 품도 고향 동네도 점점 작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저 멀리 새로운 세계가 눈에 들어오고 나면 어느날 문득 떠나게 된다.

 

이렇듯 성장은 작아져버린 세계를 떠나는 여행일 수밖에 없다. 익숙한 곳을 떠났기에

낯선것들과 마주치게 되고 크고 작은 흔적 혹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우리를 다시 성장하게 한다.적어도 삶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다.

그리하여 이 세상 이치를 알 만하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부고를 듣는다.

 

예상치못했던 어느 순간. 사랑하거나 미워했던 어떤이의 부고를 듣는다. 이 부고 역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킨다.

 

이제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이후의 세계까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부고

의 체험은 다른 성장 체험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알 것만도 같았던 삶의 세계가 갑자기 불가사의한 것으로 만든다.

그 누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낱낱히 알겠는가?

 

이 세계는 결코 전체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어떤 불가해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 불가해한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위태로운 선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

이 모든 것이 성장의 일이다.

 

그렇다면 성장은 무시무시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성장은 확장된 시야와 더불어

심미적 거리라는 선물도 함께 준다.

 

아름다움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깍아지른 벼랑도 바로 앞에서나

무섭지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게 보인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과정은  그 과정을 통해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이다.

시야의 확대가 따르지 않는 성장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확대된 시야 없이는 상처를 심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상처가 없으면 향유할 대상 자체가 없다.

 

상처가 없다면 그것은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 망설이다가 끝낸 인생에

불과하다.

 

상처도 언젠가는 피 흘리기를 그치고 심미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성장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구원의 약속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http://cafe.daum.net/daum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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