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한국 진보의 이중적 국가 관념
양승태/이화대학교 명예교수
노스웨스턴대학교 정치학박사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평소 진보세력의 정치적 행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국 진보의
정치적 수사에서 본디 국가라는 어휘는 거의 없거나 희미하다.
그들에게는 인권이나 평등이라는 가치들이 국가의 존재보다 우선한다. 그들의 복지정책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국가는 국민 개개인들의 삶이 의지하는 도피처나 개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적 존재로서만 강조될뿐이다.
국민들의 의사 전체를 보편적으로 승화하여 삶의 영속성인 이상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역사적
주체라는 국가 관념은 그저 생소할뿐이다
그 점은 최근의 사드사태에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다.그 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국가라는
존재의 핵심적 요소인 공권력이 그 사태의 와중에서 무력화되는 차원을 넘어 私人들의 집단
적 행위에 "지배"받는 양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아무런 공식적인 해명도 없이 그러한 상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생활 운영의 근본적인 원칙이자 국가적 정의의 핵심인 법질서가 그들의
친위 혹은 동조 세력들의 반칙과 불법행위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데도 "반칙이 없고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 진보의 그러한 혼란스럽고 이중적인 국가 관념에서 보수정당이 추구하고 구현해야
할 정책의 기본 방향도 찿을 수 있다.
국가라는 논제의 부활을 통해 대한민국이 직면한 모든 심각한 문제들을 그 근원에서 새롭게
검토하고 국가생활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국가적 과제의 수행에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없다.
다만 한국의 진보는 그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정신적 성향과 그것이 형성된 역사적 과정에
내재한 구조적인 요인 및 그 이념의 교조적인 성격 때문에 국가라는 논제를 주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보수에게는 그 이념적 빈곤문제를 떠나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의
원초적인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바로 그러한 사실에 한국의 보수에게 국가적 위기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부과된 이유도
찿을 수 있지만 동시에 국가라는 논제를 새롭게 부활시키면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정치적 여력 및 역사적 책무가 부여될 수 있는 근거도 찿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국가라는 논제를 부활시키고 주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이나 정책이
필요한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보수 정당은 바로 실용적이고 실천적이라는 이유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정책에만 몰두하지
말고 한국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사의식의 계발 및 정립이라는 근원적이면서 장기적인
목표를 단계별로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진보세력의 비판과 공격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신적
원천을 마련하는 길이다.
한국보수라는 특정 정파의 문제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역사적 흐름의
실체 혹은 진실과의 조화를 통해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업인 것이다.
정치의 전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깨달음이 뒷받침되지 않는 원칙주의는 자유로운 정치적
소통을 막으면서 국가를 고식적이고 경직화된 관료체제로 만든다.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이 무교양의 치졸하고 그악스러운 정치형태와 결합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파쟁은 국민적 빈축의 대상을 넘어 정체성마저 위협하게 된지 오래다.
속물적 보수와 위선적 진보는 투쟁과 야합을 반복하면서 국가발전을 정체시킬 뿐이며
반동적 보수와 광기의 진보는 아전투구의 싸움 속에서 국가를 쇠퇴시킬뿐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은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의 균형적 발전을 비유하는
어구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비유이자 정치적 수사일 뿐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새는 물론 좌우의 날개로 날지만 높낮이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몸통이다
그 몸통이 국가라면 국가라는 몸통의 실체 및 생리와 병리를 누가 얼마나 더 깊이 더
폭넓게 파악하는냐에 따라 국가생활을 주도하는 자와 보조하는 자가 구분된다.
보수정당이 스스로 처한 위기의 극복과 더불어 그러한 주도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도
국가라는 "몸통"의 실체 및 생리와 병리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달려있다.
양승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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